2023-08-01
오늘로서 우리 회사 고려아연은 49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50년이라는 기념비가 불과 1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49년을 맞이하면서 저는 우리의 앞날을 바라보고 또한 우리가 걸어온 지난 49년의 발자국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뒤에, 또 우리의 앞에 펼쳐진 이 두 개의 대장정을 바라보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시나요? 약간의 설렘, 뿌듯함,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두려움, 걱정, 피로도 같이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을 꾸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입니다. 그 꿈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고 첫 발자국을 밟아나가는 것 또한 즐겁고 신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꿈과 계획이 크면 클수록 그다음 과정은 고달프고 시행착오의 연속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1년 전에 우리가 괴로운 여정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였고 그에 대한 다짐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꿈이 되고 계획이 되는 것은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단계일 뿐입니다. 마치 첫사랑에 빠지는 것 같은 황홀함을 느끼는 단계이긴 하지만 정말 어려운 건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꿈을 꾸고 목표를 설정한 것에서 나아가 실현을 위한 진정한 도전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완전치 않은 지도로 길을 찾아야 하고, 가는 도중에 친구를 만나면 협력하고, 적을 만나면 싸우고, 배고프면 음식을 찾아서 먹고, 필요하면 쉬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 길을 나아가야 합니다.”
(2022년 창립기념사 “마부를 모집합니다“에서) |
우리는 그때 우리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했었고, 그때 예측했던 일들이 상당히 정확하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의 예측과 지금 우리의 상황이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때 우리의 예측은 이론과 생각이었고, 지금 우리의 상황은 당장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TV에서 벌어지는 권투 경기를 보면서 “왜 저 선수는 더 빨리 피하고 가드를 올리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나요? 이에 대해서 유명한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얼굴을 한 대 맞기 전에는.”
1년 전의 우리가 각종 메탈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생각, 세계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생각, 물가가 급속도로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 우리가 하고자 하는 새로운 사업들, 시장들이 변수투성이라는 생각을 못 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생각뿐만이 아니라 다 예상하고 나름대로 준비했던 일입니다. 오랫동안, 진짜 열심히.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생각하는 것과 직접 느끼면서 하루하루 겪는 일은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우리는 이제 링 위에 올라가서 1라운드를 마치고 2라운드, 3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는 권투선수와 같은 상황입니다. 우리의 계획과 생각에서는 가늠하지 못한 고통과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약간은 허둥거리면서 1라운드를 마쳤습니다. 1라운드 동안 몇 대 맞아보니까 그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당황함 속에서도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보았고, 그 패턴이 우리가 그동안 열심히 훈련하고 준비했던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1라운드에서는 경기장의 함성과 불빛에 취하여 몸이 약간 굳어버린 것 같았지만, 이제 오히려 몇 대 맞고 나니 몸에서 적당히 열도 나고, 움직임도 유연해지고, 숨도 다시 고르게 돌아오고, 다시 정돈과 여유가 마음속에 생깁니다.
우리 고려아연은 하루아침에 생긴 얄팍한 실력의 회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49년 동안 한 길을 걸으며 여기까지 왔고, 비철 제련에서 세계 최고 강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의 지경을 넘어서 신재생에너지에서, 2차전지 소재 분야에서, 재활용 사업에서 세계 최고가 되고자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꾼 그 꿈의 이름이 바로 ‘트로이카 드라이브’입니다. 우리가 추진하는 사업 하나하나가 만만한 사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난 49년간 해온 비철금속 제련 사업 또한 절대로 만만한 사업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신사업에 도전한 것은 이 사업들이 쉬운 사업이어서가 아닙니다. 49년 전 고려아연이 만들어진 것 또한, 우리가 기존에 제련 사업이 쉬운 사업이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싸움을 시작할 때 이미 이것이 쉬운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상대방이 세계 챔피언임을 알고 이 링 위에 올랐습니다. 이제는 날아오는 펀치를 맞더라도 참아가면서, 숨이 차도 스텝을 밟고 몸을 움직이면서, 손이 무거워도 가드를 올리면서,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면서 2, 3, 4 라운드를 맞이해야 합니다.
작년에 저는 여러분들께 “마부를 모집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었던 메시지는 우리가 타고 가는 삼두마차에는 승객의 자리는 없다는 것 이었습니다. 이 마차에는 오직 마부들의 자리만이 있습니다. 아무리 험한 길을 가고 그 여정이 고생스럽다 하여도, 우리의 꿈꾸는 목적지가 이 고생을 해서라도 갈 만한 곳이기 때문에 갑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더 큰 힘을 주는 것은 내 옆에 같이 고생하고 땀 흘리고 포기하지 않는 동료들이 이 마차를 함께 끌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서로에게 의지하며 2023년을, 그리고 우리의 다음 50년을 달려가보지 않으시겠습니까?
2023년 8월 1일
고려아연 회장 최윤범 올림
p.s. 참고로 마이크 타이슨의 발언은 타이슨이 1996년 11월 9일 에반더 홀리필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한 말입니다. 그 당시 15대 2의 비율로 많은 사람들이 마이크 타이슨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11라운드 TKO로 에반더 홀리필드가 승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