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8
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고려아연-영풍 보고서 2편
문제 숱한 영풍 석포제련소
2023년부터 이어진 인명사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해 논란
구속기소된 영풍 대표이사
원청 경영 책임자 구속 1호
실적 부진 둘러싼 논란 여전
■ 영풍 위험요인❷ 인명 사고와 대표 구속 = 잊을 만하면 터지는 인명사고도 영풍의 경영능력을 의심케 하는 요인이다. 안동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1997~2024년 석포제련소와 관련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15명이었다. 이중 영풍 측이 ‘회사와 무관한 교통사고’라고 밝힌 탱크로리 전복 사고 2건(1997년‧2017년)을 제외해도 사망자는 13명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거다. 2023년 12월 공장 모터 교체 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가 급성 비소砒素(비금속원소) 중독으로 사망한 후 4개월 만인 2024년 3월 냉각탑 작업 중 하청노동자가 떨어진 석고물질에 맞아 사망했다. 5개월 뒤인 그해 8월 공장 옥상에서 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가 또 숨졌다. 사망 원인은 열사병으로 추정됐지만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런 인명 사고는 안정적인 회사 경영을 저해하는 ‘나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검찰은 2024년 9월 박영민 영풍 대표이사(중대재해법 위반)와 배상윤 석포제련소장(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각각 구속기소했다. 앞서 언급한 2023년 12월 하청노동자가 급성 비소중독으로 사망한 게 단초였는데, 영풍은 원청의 경영 책임자가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구속기소된 첫번째 기업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더 심각한 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영풍 임직원이 비소 측정 데이터를 삭제하는 등 조직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증거인멸 정황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긴커녕 논란을 덮는 데만 급급했다는 거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산업폐수를 불법으로 배출하고 하청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는 곳이 석포제련소”라며 “영풍은 지역에서 각종 환경 노동 범죄를 저지르는 나쁜 기업 중 한곳”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영풍 위험요인❸ 실적 부진의 원인 = 영풍이 겪고 있는 실적 부진의 원인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할 ‘위험요인’이다. 2020년 235억원이었던 영풍의 영업이익은 2021년 72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22년과 2023년엔 각각 –1078억원, -1424억원을 기록하며 적자폭을 키웠다. 2024년 3분까지도 적자(-610억원) 행진을 이어갔다.
영풍은 실적 부진의 원인을 환경개선 투자비용에서 찾고 있다. 영풍 관계자는 “매년 1000억원 이상을 환경 개선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탓에 실적이 좋지 않은 것”이라며 “환경 개선 사업이 끝나면 실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영풍이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꼽은 환경 개선 사업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거다. 영풍은 매년 1000억원을 환경 개선 사업에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0~2023년 환경 개선 투자와 관련해 충당부채로 처리한 비용은 연평균 825억원에 불과했다. 영풍이 약속한 1000억원을 넘은 것은 2022년(1036억원)이 유일했다. 2024년 3분기 기준 환경 개선 투자 관련 충당부채는 1억3232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영풍 관계자는 “환경 개선 투자금은 충당부채에서 사용하는 금액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며 “사업보고서의 충당부채를 환경 개선 투자금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 개선 투자금액을 일일이 공시하지는 않는다”면서도 “공정거래위원회 등에는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영풍의 실적은 ‘환경 개선 투자’와 무관하게 악화할 공산이 크다. 특히 앞서 언급한 석포제련소 영업정지처분(2개월)은 2025년 실적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영풍은 2024년 12월 30일 발표한 공시를 통해 “2025년 2월 26일부터 4월 25일까지 석포제련소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는데, 이 사태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영풍에 따르면 석포제련소의 생산중단으로 발생하는 매출액 감소 규모는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영풍의 2019년 매출액(3조841억원)의 42.1%에 해당하는 수치다. 2023년부터 이어진 실적 부진이 2025년에도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영풍은 실적 부진을 ‘환경 개선 사업’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투입한 충당부채를 살펴보면 앞뒤가 맞지 않다”며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환경 개선 사업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게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영풍의 주가는 본업의 실적보단 순자산가치(NAV‧Net Asset Value)의 70%를 차지하는 고려아연 주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며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시장에 경영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주가는 외부 이슈에 따라 출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영풍의 경영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시장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영풍+MBK파트너스’ 진영보단 고려아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는 지난 14일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의 최대 쟁점 안건으로 떠오른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안건에 찬성을 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영풍‧MBK파트너스가 요구하는 실질적인 이사회 개편을 지지할 근거가 불충분하다. 지난 몇년간 고려아연의 재무‧경영 성과는 최윤범 회장의 리더십을 비롯해 동종업계 대비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었다. 고려아연은 장기적 성장과 가치 창출을 달성한다는 명시된 목표를 갖고 트로이카 드라이브(신재생에너지‧자원순환‧2차전지 소재) 전략을 선전했지만 영풍‧MBK파트너스 측은 새로운 벤처기업의 투자를 크게 줄이고 단기 수익을 우선시할 것이다.”
영풍‧MBK파트너스는 글래스 루이스의 평가에 즉각 반발했다. MBK파트너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글래스루이스가 편향된 의견을 제시했다”며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단기수익을 우선시한다는 사실과 다른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글래스루이스의 의견은 시장이 영풍과 MBK파트너스에 어떤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면임에 분명하다.
임시주총의 ‘캐스팅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도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를 열고 이사 수 19인 이하 제한과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에 찬성하기로 했다. 두 안건은 영풍‧MBK파트너스를 견제하기 위해 고려아연이 제안한 안건이다. 국민연금이 사실상 고려아연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국민연금은 영풍‧MBK파트너스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지분(4.51%)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다. 국민연금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임시주총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고려아연이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의 결정으로 수세에 몰린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입장문을 통해 “고려아연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소수주주 보호란 제도 본연의 취지는 사라지고, 최윤범 회장의 자리보전 연장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 기사 전문: 국민연금도, 글로벌 자문사도, 영풍 ‘손’ 안 들어준 까닭 [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