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7
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고려아연-영풍 보고서 1편
고려아연 이끌 능력 누구에게 있나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자질론
지분 전쟁에 묻힌 분쟁 후 이슈
고려아연 배당금에 의존한 영풍
영풍 향한 시장의 수많은 우려
# 75년 넘게 동업을 이어오던 고려아연과 영풍이 ‘경영권 분쟁’의 늪에 빠져든 건 지난해 9월의 일이다. 해를 넘어 이어지고 있는 두 회사의 분쟁은 ‘경영권’ 다툼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 치열한 경영권 다툼의 윤곽은 23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이날 임시주총의 주요 안건은 사외이사 이사 수 제한과 집중투표제 도입이다. 모두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이 될 만한 사안이다. 누가 이사회를 장악하느냐에 따라 고려아연에 미치는 영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참고: 사외이사 수 제한은 고려아연 이사회의 과반을 누가 차지하느냐가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하기 위해 14인의 이사 선임 안건을 제안했다. 여기에 맞서 고려아연이 제안한 게 집중투표제 도입이다. 집중투표제는 선임하려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소액주주도 특정 후보에 의결권을 집중할 수 있는 대표적인 대주주 견제 수단이다.]
# 문제는 이 싸움이 과연 누굴 위한 것이냐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를 끌어들인 영풍도, 외부 차입금으로 ‘쩐錢의 전쟁’에 뛰어든 고려아연도 어쩌면 ‘남는 게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을지 모른다. 누가 이기든 승자의 저주에 빠질 우려도 있다.
# 지금 따져봐야 하는 건 그 이후다. 과연 영풍과 MBK파트너스, 그리고 고려아연은 회사를 제대로 경영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 더스쿠프가 심층취재 추적+ ‘고려아연-영풍 보고서’에서 이들의 경영능력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1편과 2편에선 영풍, 3편에선 고려아연을 다룰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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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2024년 3분기까지 영풍이 챙긴 배당금은 5400억원을 웃도는데, 매년 조금씩 더 챙겨갔다. 2019년 559억원이었던 영풍에 들어온 배당금은 2020년 711억원, 2021년 779억원, 2022년 1037억원, 2023년 1556억원 등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당연히 영풍의 실적에서 고려아연의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사실상 고려아연의 배당금으로 먹고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례로 2024년 3분기 영풍은 204억원에 이르는 영업손실(개별 기준)을 냈지만, 당기순이익은 578억원의 흑자를 달성했다. 2024년 3분기까지 받은 789억원의 배당금이 든든한 버팀목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고려아연의 배당금이 없었다면 이때 영풍은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영풍이 고려아연의 배당금 덕을 누린 건 어제오늘이 아니다. 영풍의 영업이익이 고려아연에서 받은 배당금보다 많았던 건 2016년(영업이익 525억원·고려아연 배당금 423억원)이 마지막이었다. 영풍으로선 2017년부터 7년간 고려아연의 배당금으로 버텨온 셈이다. 영풍이 경영권 분쟁까지 벌이면서 고려아연을 지배하려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영풍의 백기사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참전한 MBK파트너스는 어떨까.[※참고: MBK파트너스는 2024년 9월 영풍과 주주간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으로 MBK파트너스는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의 ‘지분 절반+1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경영권 분쟁에서 영풍이 승리하면 MBK는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에 오른다.]
먼저 MBK파트너스의 실적 몇개를 살펴보자. 2013년 ING생명(현 신한라이프)을 1조8400억원에 인수한 MBK파트너스는 이를 2017년 코스피시장에 상장시킨 다음 2019년 신한금융그룹에 2조20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성공적인 엑시트였다.
2019년 1조3800억원을 들여 지분 79.83%를 인수한 롯데카드도 성공 케이스로 손꼽힌다. 2020년 14조7970억원이었던 롯데카드의 자산 규모가 2024년 3분기 24조4306억원으로 두배가량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뒤 기업 가치가 고꾸라진 곳도 숱하다. 대표적인 기업은 2015년 7조4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100%를 인수한 홈플러스다.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를 사들인 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실적 악화에 허덕이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인수하기 전인 2014년 대비 2023년 매출액(6조9314억원)은 19.1% 감소했고, 영업이익(2408억원→ -1994억원)은 적자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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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도 마찬가지다. 2013년 9900억원(지분 94.2%)을 투자했지만 네파의 실적은 예전 같지 않다. 2013년 4703억원이었던 매출액은 2023년 3136억원으로 33.3%나 쪼그라들었고, 영업이익은 1182억원에서 140억원으로 88.1% 감소했다. 이 때문에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했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고려아연을 지배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고려아연이 국내 비철금속 업계를 이끄는 기업이란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고려아연은 세계 1위 비철금속 업체다. 아연·은·인듐 생산능력은 세계 톱이고, 금속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여러 물질을 뽑아내는 기술력도 글로벌 최고 수준이다. 이런 점에서 고려아연을 이끌기 위해선 수준 높은 경영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을 더 가치 있는 회사로 만들 수 있다”면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심층취재 추적+ ‘고려아연-영풍 보고서’에서 영풍의 위험요인을 정밀하게 분석해봤다.
■ 영풍 위험요인❶ 석포제련소 = 영풍의 경영능력에 물음표를 던지는 이들은 ‘석포제련소 운영정지’ 논란을 첫번째 위험요인으로 꼽는다. 석포제련소는 두 회사가 갈라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석포제련소는 영풍이 1970년대부터 아연·황산·전기동 등 비철금속을 생산하고 있는 곳이다. 연간 매출액은 2023년 기준 1조4962억원. 그해 영풍의 매출액이 3조7617억원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전체 매출의 40%가량을 석포제련소가 책임지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영풍은 최근 석포제련소의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작은 2019년에 터진 ‘낙동강 카드뮴 오염 문제’였다. 그해 석포제련소 인근에 있는 낙동강에서 기준치의 4578배가 넘는 카드뮴이 검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카드뮴 유출 혐의를 받은 건 다름 아닌 석포제련소였다. 공장에서 나온 카드뮴이 낙동강으로 유입됐다는 의혹이었는데, 환경부는 영풍에 책임을 물어 2개월의 영업정지와 281억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영풍은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전을 불사했지만, 2024년 11월 대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영업정지가 확정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구지방환경청·경상북도·봉화군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55회에 걸쳐 대기·수질·토양·지하수 등을 점검한 결과는 더 심각하다. 이 과정에서 영풍은 ‘대기측정기록부’를 1868건이나 조작하고, 허가도 받지 않은 ‘지하수 관정’ 52개를 설치하는 등 76건의 환경법을 위반했다.
이 때문에 환경부와 경상북도·봉화군은 2015년 이후 영풍에 토지정화명령을 9건이나 하달했다. 하지만 이행률은 저조하다. 봉화군은 2024년 11월 석포제련소 제1공장과 제2공장의 면적 기준 토지정화 이행률이 각각 16.0%, 1.2%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석포제련소의 토지정화기한은 2025년 6월 30일까지다.
사실 석포제련소의 폐기물 문제는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많다. 70년 넘게 ‘동업 관계’를 유지해온 영풍과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을 시작한 결정적인 원인이란 주장도 나온다.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은 2024년 9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비판했다. “영풍은 석포제련소를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엔 관심이 없다. 석포제련소의 폐기물 보관장에 있는 유해 폐기물을 떠넘겨 고려아연을 영풍의 폐기물 처리장으로 만들려 했다.”
영풍은 “근거 없는 억측일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석포제련소 논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어서인지 시장의 반응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석포제련소가 떠안고 있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곳에선 2023년 이후 인명사고가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 그 결과, 영풍의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 기사 전문: 석포제련소는 왜 멈췄나 : 영풍 경영능력에 ‘의문’ 던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