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사모펀드가 영끌을 할까

2025-03-18

(머니투데이, 2025년 3월 18일 보도)

 

홈플러스가 이달 초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세계 최대의 장난감 회사였던 ‘토이저러스(Toys”R”us)’가 소환됐다. 홈플러스의 상황이 과거 토이저러스의 사례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장난감 천국’으로 불리며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토이저러스는 2017년 파산했다. 1948년 설립된 토이저러스는 한때 세계 1600개 매장에서 11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미국 신생아 수의 감소와 아마존의 등장으로 인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소비 패턴 변화로 매출이 급격하게 줄며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경영사정이 악화되고 있던 상황에서 2005년 사모펀드가 75억 달러에 토이저러스를 인수했다.

 

사모펀드는 인수자금 중 70% 이상을 금융권에서 빌렸다. 돈을 빌려서 회사 경영권을 인수하는 소위 ‘차입매수(LBO)’를 한 것이다. 과도한 대출로 이자비용만 연간 수천억 원을 지불해야 했다. 그로 인해 회사 현금흐름의 절반가량이 이자비용에 사용됐다. 그렇게 되다 보니 점포 확장과 마케팅, 온라인 사업의 성장을 꾀할 여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막대한 부채 부담으로 토이저러스는 2017년 기업회생제도인 Chapter 11을 신청했다. 부채를 탕감 받고 재기를 노렸으나 끝내 무산됐다. 이처럼 토이저러스의 파산은 사모펀드의 무리한 차입경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1991년 삼성그룹은 신세계를 계열 분리시킨 후, 새롭게 유통업에 진출하기 위해 삼성물산에 유통사업부를 신설했다. 1997년 삼성물산은 대구에 홈플러스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할인 매장을 열었다. 그러나 IMF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경영이 어려워지자 삼성물산은 홈플러스를 분리하여 1999년 영국 테스코와 삼성테스코라는 합작사를 설립했다. 그 후 2005년에는 아람마트, 2008년에는 한국카르푸를 흡수합병했던 이랜드리테일(홈에버)까지 인수하면서 규모를 키워 나갔다. 그러다 2011년 삼성은 모든 주식을 테스코에 넘기고 유통업에서 손을 뗐다. 이때 사명이 삼성테스코에서 지금의 홈플러스로 변경됐다. 그러나 영국 본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테스코는 2015년 홈플러스를 MBK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에 7조 2000억 원에 매각했다. 홈플러스의 차입금 1조 2000억 원을 승계한 것을 제외하면 MBK의 실제 인수금액은 6조 원이었다.

MBK는 전체 인수 금액의 절반에 달하는 3조 1000억 원을 홈플러스 주식과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권에서 대출받아 조달했고 2조 4000억 원은 이미 조성했던 MBK 3호 펀드에서 투자했다. 나머지 7000억 원은 상환전환우선주(RCPS)로 충당했다. 결국 부채 성격의 상환전환우선주를 포함 총 3조 8000억 원의 부채를 안고 인수한 것이다. 그러나 인수 후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치게 높은 부채 규모는 계속 회사 경영에 부담을 안겼다. 회생 절차를 신청한 시점에서 홈플러스의 이자보상배율은 0.7배에 불과해, 영업이익으로는 이자도 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럽게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금융권이나 납품업체, 입점업체 및 임직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 국민연금도 수천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손실 위험에 놓였다.

 

홈플러스의 경우, 파산까지 가진 않았지만 온라인 환경에 밀린 오프라인 유통이란 산업적 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사모펀드에 의한 무리한 차입경영으로 인한 막대한 부채가 결국 회사의 발목을 잡았다는 점에서 토이저러스와 유사하다. 두 사례는 인수금액과 차입 규모도 비슷하다. 한편 홈플러스는 회사 소유 매장을 매각하여 자금을 확보하고 그 매장을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차입금을 상환하였으나, 실적이 좋은 ‘알짜 매장’을 우선적으로 매각하면서 경쟁력을 상실하였고, 자가매장이 임대매장으로 전환되면서 임대비용 부담으로 재무구조가 더 악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통 사모펀드가 LBO 방식으로 회사를 인수할 때는 일단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SPC(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여, 인수에 필요한 금액을 조달한다. 자금 조달 방법은 3가지다. 가장 먼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펀드에서 일부 자금을 넣고, 금융권에서 인수금액의 50%~80%까지 돈을 빌리고, 나머지는 다른 투자자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ABC라는 회사를 인수하는데 필요한 자금이 6조 원이라 하면 가칭 ‘ABC투자’라는 SPC를 만들고 2조 원은 펀드에서, 3조 원은 은행에서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고, 나머지 1조 원은 또 다른 투자자로부터 조달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차입매수라 하는데 쉽게 말하면 돈을 빌려서 회사를 산다는 뜻이다. 그리고 통상 3년에서 5년 안에 인수가격보다 더 높은 금액으로 회사를 매각한다. 그러나 계획대로 회사의 가치가 올라가지 않고 반대로 떨어지게 되면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다. 부동산으로 비유하면 ‘영끌’로 집을 사고, 그 집에서 나오는 월세로 빚을 갚으면서 집값이 오르면 매각해서 막대한 수익을 얻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집을 산 후 이자를 갚느라 ‘하우스푸어’가 되거나 집값이 폭락하여 순식간에 쪽박을 차는 위험성은 항상 상존한다.

LBO는 장단점이 명확하다. 장점은 인수 규모에 비해 적은 금액으로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과 차입금에 대한 이자가 비용으로 계산되므로 법인세가 절감된다는 것이다. 반면 단점은 경제 상황이나 경영이 부실해지면 지나친 이자 부담으로 회사가 쉽게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게임이다.

그런데 이러한 MBK의 LBO 방식 투자가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에도 진행되고 있어 시장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자칫하면 홈플러스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MBK는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와 장내매수로 1조 5000억 원 정도를 투입했는데, 70%가 넘는 약 1조 1100억 원이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이다. 그리고 경영권 확보를 위해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까지 인수할 경우 MBK의 차입금은 수조 원대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차입금이 늘어나면 R&D가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은 뻔하다. 회사의 영업이익으로 당장 이자를 갚기도 벅찬데 미래를 위한 투자는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의 비즈니스 특성상 R&D가 위축되면 국가 산업 역량의 약화로 이어진다. 특히 첨단 소재와 이차전지 관련 기술 개발이 지연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을 감안하면, 거액의 배당금은 물론 계열사 매각, 핵심기술 판매 등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경영권 분쟁으로 3월 17일 현재 20조 원으로 커진 고려아연의 시가총액을 감안하면, 향후 MBK가 제3자에게 다시 경영권을 매각해서 차익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벌써부터 제2의 홈플러스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모펀드의 LBO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지나친 영끌과 그 대상이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고려아연과 같은 국가 전략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경우, 차입매수를 엄격히 제한하는 국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차입금 한도를 제한하거나 R&D 투자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들이다.

미국이 촉발시킨 관세전쟁으로 그 어느 때보다 한국경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우리나라 기업들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경영권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 기사 전문: [유효상 칼럼] 왜 사모펀드가 영끌을 할까